박유전·이청준·임권택, 세 거장의 〈서편제〉

한恨은 아픔이며, 칼로 긋듯이 가슴에 오는 통증이다. 이청준의 소설이건 임권택의 영화건 다르지 않다. <서편제>(1993)는 한국적 한에 대한 깊고 깊은 정서적 사유를 담고 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제작 단계에서 모두가 망할 거라던 그 영화 <서편제>는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서울 관객 100만 명을 넘겼다. 서구문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당시, 가장 한국적인 정신을 담아낸 ‘판소리’는 관객들에게 큰 위로였다. 상처로써 상처를 보듬는 우리 고유의 소리를 들으며, 관객들은 묘하게 가슴에 켜켜이 쌓였던 한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보성 회천면에 위치한 판소리 성지. 서편제의 창시자 박유전 명창을 비롯해 정응민, 조상현 명창 등 서편제 계보를 이은 명창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전시관이다.
보성 회천면에 위치한 판소리 성지. 서편제의 창시자 박유전 명창을 비롯해 정응민, 조상현 명창 등 서편제 계보를 이은 명창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전시관이다.

영화 <서편제>는 한을 풀어내는 방식도 깊었다. 소리와 북이 만나 풍진 세상을 하염없이 건너간다. 청산도 당재 언덕에서 황톳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는 세 사람이 있다. 모두 삶에 지친 표정이었고, 생에 큰 미련 따위는 없어 보였다. 터벅터벅 저승으로 향하는 것 같은 느린 걸음이 어느 순간 빨라졌다.

아버지(유봉)가 “사람이 살면 몇 백 년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로 시작하는 ‘진도아리랑’을 선창한다. 딸(송화)이 화답하고도 한참을 터덜터덜 걷기만 하던 아들(동호)은 결국 북채를 잡는다. 아비와 딸의 소리는 하늘을 돌아 이승과 저승을 서로 내통하는 것 같았고, 세 사람의 춤사위는 모든 인간의 한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무려 5분에 걸친 길고 긴 롱테이크 기법으로 촬영된 이 영상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오래 회자되었다. 

 

서편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히는 아버지 유봉, 딸 송화, 아들 동호의 창과 춤사위
〈서편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히는 아버지 유봉, 딸 송화, 아들 동호의 창과 춤사위

 

한을 풀고 한을 넘어서는 ‘득음’

한이 담긴 소리는 힘이 세다. ‘서편제’ 소리의 기본이 그러했다. 딸이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 한을 심어준다는 명목으로 딸의 눈을 멀게 했던 아버지는 죽기 직전 딸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는다. 말하지 않았다 해도 딸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이승에서의 마지막 말을 전한다. “동편제는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하다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정한이 많다고들 하지. 허지만 한을 넘어서게 되면 동편제도 서편제도 없고, 득음의 경지만 있을 뿐이다.” 한을 풀고 한을 넘어서는 것, 그것이 소리의 숙명이며 사람의 삶이다.

 

보성소리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명창들. 왼쪽부터 성우향, 성창순, 조상현, 故 정권진 명창.

‘서편제’의 창시자는 박유전이다. 조선후기 8대 명창이었으며, 소리판에서는 소리의 신이 이 나라 소리의 마지막 방점을 찍기 위해 보낸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그는 보성 강산에서 70세였던 1904년 눈을 감았다. 눈길에서 얼어 죽은 객사였으니, 이 나라 최고 소리꾼의 죽음으로는 매우 초라했다. 

하지만 그가 남겨 놓은 소리 유산은 ‘서편제’의 계보를 완성했고, 박유전이 말년에 자리 잡았던 보성은 소리의 성지가 됐다. 보성에 가면 여전히 박유전의 소리 인생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보성읍에는 ‘박유전선생기념비’가 서 있으며, 그가 살았던 강산마을에는 ‘강산재판소리예적비’가 서 있다. 강산마을에서 내를 건너 고개 하나를 넘어가면 회천면에 박유전의 제자이며, ‘보성소리’를 완성한 정응민의 집터가 남아있다.

 

판소리 전수교육관에서는 판소리 공연과 명창들의 판소리교실이 운영된다.
판소리 전수교육관에서는 판소리 공연과 명창들의 판소리교실이 운영된다.

박유전은 판소리를 위해 세상에 온 사람이었다. 순창의 이름 없는 소리 가문에서 태어났다. 소리꾼이었던 아버지는 박유전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오직 맏아들에게만 소리를 가르쳤다. 어려서 한쪽 눈을 실명해 외눈박이였던 그는 천대와 괄시의 대상이었다. 그 한이 소리에 대한 집념으로 이어졌고, 어깨 너머 배운 소리로 25세에 전주대사습에 나가 ‘심청가’로 장원을 차지했다.

 

박유전선생기념비
박유전선생기념비

 

“박유전의 소리가 천하 제일강산第一江山”

박유전이 외눈박이였던 것과 <서편제>에서 송화의 실명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람의 한은 상처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삶에는 상처의 맺힘과 풀림이 공존하는데, 둘에게 실명이 맺힘이라면 득음은 풀림이었으며 한의 승화였다.

득음을 얻은 박유전은 전라감사의 추천으로 한양으로 올라가 흥선대원군을 만난다. 운현궁 사랑방에 기거하며 그만의 소리를 불렀다. 수많은 소리 식객들을 후원했던 흥선대원군은 박유전의 소리를 무척 아꼈다. “박유전의 소리가 천하 제일강산第一江山이다”고 평하며, 강산江山이라는 호를 내려줄 정도였다. 외눈박이인 것을 안쓰럽게 여겨 눈을 가릴 수 있도록 검은 안경인 오수경烏水鏡도 선물했다. 

아마도 그때가 박유전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였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면서 그는 명성황후 일족들의 보복을 피해 나주로 몸을 숨겼고, 정응민의 큰아버지였던 정재근을 만나 보성 강산마을에 터를 잡게 된다. 박유전은 한 점 혈육도 두지 못하고,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오직 정재근과 정응민에게 자신의 소리를 전수하는 것으로 살았다. 어느 밤 귀가하는 눈길 위에서 얼어 죽었고, 마을 산에 묻혔다. 모든 소리를 다 내어주고도 더 내줄 소리가 있었던 것일까? 그가 죽고 사흘 동안이나 마을 뒷산에서 “내 소리 받아가라!”는 혼백의 슬픈 외침이 들렸다 한다.

 

모든 삶에는
상처의 맺힘과 풀림이 공존하는데, 
박유전과 송화에게 실명이 맺힘이라면
득음은 풀림이었으며 한의 승화였다

 

득음을 했지만 박유전도 송화도 스스로의 삶을 구원하지는 못했다. 소설 <서편제>에서 이청준의 사유가 가장 빛나는 지점은 한에 대한 한국적인 해석에 있다. 이청준은 이렇게 썼다. “사람의 한이라는 것이 그렇게 심어 주려 해서 심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닌 걸세. 사람의 한이라는 건 인생살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긴긴 세월 동안 먼지처럼 쌓여 생기는 것이라네. 어떤 사람들한테 외려 사는 것이 바로 한을 쌓는 것이고 한을 쌓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 되듯이 말이네. 그 보다도 고인한테 좀 미안한 말이지만, 노인은 아마 그 여자의 소리보다 자식년이 당신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해 두고 싶은 생각이 앞섰을지도 모르는 일일 거네.” 그렇게 사람의 삶은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

글 정상철  사진 장진주

관련 교과서

이청준 소설 <서편제>(휴이넘, 교과서 한국문학)
진도아리랑 (중1 음악, 미래엔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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