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게

어머니는 작은 게 반찬을 자주 내놓으셨다. 간장에 조리거나 고춧가루 양념을 버무린 것들이었다. 내 고향 목포 사람들은 이 게를 ‘뻘게’라 불렀다. 갯벌에서 잡아온다고 그리 불렀던 것 같다. 

칠게란 단어를 얼마 전 처음 들어봤다. 온몸에 갯벌을 뭍히고 다녀서 칠칠맞다고, 칠월에 맛있다고 칠게라는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검색됐다. 뻘게와 칠게 사이를 오가던 시선이 ‘화랑해’ ‘서렁기*’에서 멈췄다.

<자산어보>에서 칠게는 ‘화랑해花郞蟹’다. ‘해’는 게의 한자다. ‘화랑’은 당시 남자아이를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칠게가 집게발을 펼치고 기어다니는 모습이 춤추는 남자아이처럼 보여서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화랑은 요샛말로 ‘남자 아이돌’쯤 될 것이다.

칠게는 물과 뭍의 경계인 갯벌에 산다. 밀물 때 갯벌의 깊은 어둠 속에 침잠하다가, 썰물 때 집게발을 높이 들고 포식자를 피해 살금살금 살아간다. 전남의 신안, 무안, 해남 갯가 사람들은 칠게를 ‘서렁기’로 불렀다. 어둠과 두려움 속에서 서럽게 산다고 붙여진 이름 아닐까. 

 

칠게와 (남자) 아이돌의 삶도 묘하게 닮았다. 아이돌은 아이와 어른 사이의 몸으로 꿈과 밥벌이의 경계에서 고달프다. 아이돌을 방송에서 볼 때마다 불편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더하다. 군대 제식훈련 같은 군무를 위해, 그들은 어둠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피눈물을 흘린 걸까. 대중과 회사로부터 언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또 어떻게 견뎌왔던 걸까. 그나마 우리가 화면으로 볼 수 있는 아이돌은 그중에 선택(?)받은 쪽일 텐데.

아이돌은 한국 쇼 엔터테인먼트 자본의 ‘검투사’다. 웃자란 집게발을 들고 약육강식의 콜로세움에서 하루하루를 두렵게 버텨가고 있다. 아이돌의 춤과 노래라는 노동은 대체로 제값을 받지 못한다. 예술과 대박이라는 말이 그들의 노동에 그늘을 짓게 드리워서다. 19세기부터 금지돼온 아동노동이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다. 아이돌의 춤이 서러운 이유다.

칠게를 간장과 함께 불에 볶았다. 어금니 사이에 칠게 한 마리를 통째로 넣고 씹었다. 어릴 때부터 익숙했던 어머니의 손맛이 났다. 믹서기에 곱게 갈아 만든 칠게젓갈은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첫 맛은 민물새우와 바다천일염이 만난 토하젓과 비슷했다. 흙내와 짠기는 없었다. 밥 위에 얹어 몇 술 뜨자 풋풋한 향과 함께 깊은 맛이 오래 입안에 남았다. 경계에 사는 것들의 서러움에 맛이 있다면 바로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서렁기’에서도 보이듯이, 무안이 고향인 어머니의 세상에 게는 없었다. 네 쌍의 다리에 집게발이 둘 달린 동물을 어머니는 ‘기’라 불렀다. 어리석은 어린 아들은 표준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한때 어머니의 ‘기’를 게로 교정하려 했다. 그때마다 “잘 기어댕긴께 기라 하제”라며 어머니는 어색한 대면을 피했다. 팔순을 넘긴 노모는 지금도 가끔 “기 반찬 좀 해주까” 한다. 국어사전을 보니 강원도, 경상도, 충북 어머니들에게도 게는 ‘기’였다.

글 노해경  사진·요리 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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