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 예찬

달래, 돈나물, 냉이 등 봄나물 한아름

푸석푸석한 마른 풀들 사이로 파란 새순이 얼굴을 내민다. 하루가 멀다면서 온갖 푸른 것들이 하늘의 별처럼 들판 위에 다투어 뜬다. 봄이다. 이즈음 사람들은 봄나물을 캐려고 산으로 들로 나간다.

나물은 먹을 게 없어 채취하는 구황식물이 아니다. 산야(山野)의 풀들을 깊게 이해한 바탕 위에 형성된 맛, 향, 건강의 문화가 나물이다. 조리법을 보면 서양의 ‘샐러드’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도 확인된다.

무치고 데치고 삶고 볶고 버무리고 덖는다. 이처럼 다양한 동사(動詞)를 거느리는 식물조리법은 나물이 유일할 것이다. 김치와 국으로 만들어 먹고, 잘 말려 해를 넘기면서까지 밥반찬으로 오물거리는 것이니, 나물은 오히려 호사스러운 음식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봄나물로 차린 소박한 한 상

얼마나 좋았던지 우리 민족은 노래까지 지어 불렀다. 대략 200년 전에 한글로 지은 ‘농가월령가’에는 계절에 따른 나물예찬이 담겨 있다. 이월령을 보니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이국은 비위를 깨치나니…”라고 노래한다.

조선 중기의 선비 윤두서는 고향 해남의 들녘을 배경삼아 ‘채애’(採艾, 쑥을 캐다)라는 그림을 그렸다. 두 아낙네의 움직임에서 진지함, 섬세함, 건강함을 느낄 수 있다. 우리네 삶과 나물의 인연 또한 그러했다는 징표일 것이다.

윤두서의 그림 '채애'

봄이 되면 나물을 캐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됐지만 나물 유전자는 우리 몸속에 단단히 새겨져 있는 모양이다. 시장에 나온 하우스 나물을 더 싸게 살 수 있는데도 굳이 들판을 배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마음이 울렁거려서가 아닐까. 먹을 수 있는 새순, 들에서 캐는 별, 밥상 위로 모시는 새해 첫 우주가 나물인 것이니, 그처럼 푸르게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만나지 않고서는 병이 날 것 같은, 그런 마음 때문에.


글 김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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