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 개교 기념비에 새겨진 뜻

강진고등학교 야외학습장에는 개교 기념비가 있다. 40년 전에 세워진 비석이다. 이 오래된 돌 앞에 한참씩 서 있곤 한다. 지역에 대한 강진 사람들의 깊은 관심과 애정이 느껴져 학교장으로서 어떤 책임감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기념비에 의하면, 강진은 예로부터 향학열이 높은, 인구 12만 명의 소도시였다. 초등학교 35개교, 중학교 10개교, 고등학교 4개교가 있었지만, 학생들을 모두 수용하기엔 부족했다. 해마다 강진 지역 학생들이 타 지역으로 전학하는 폭이 커졌다. 

그래서 새로운 고등학교 설립에 대한 강진 사람들의 열망이 점점 높아졌다. 1973년 강진군번영회를 모체로 추진위원회(위원장 차부진)가 출범했고, 바다 건너 일본 오사카에 사는 출향민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강진 사람들은 이듬해 지역에서 모은 성금과 재일강진인회의 기부금을 합쳐 현재의 강진고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5년간 줄기차게 정부를 설득해 마침내 설립계획허가를 얻어냈다. 

강진 사람들은 건축비도 스스로 해결했다. 국내외 기부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설립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유홍 위원장은 5,800여 만 원을 희사했다. 

‘이 글을 각석하여 남기고자 함은 이 거대한 사업을 기념함에 뜻이 있거니와 예로부터 우리 고장에 흐르는 애향의 전통을 되새겨 후인에게 귀감을 삼고자 함에 더 큰 뜻을 둔다.’ 

영랑 등과 함께 동인집 <청구>를 발간한 차부진 씨가 썼다는 비문에는 강진 사람들의 애향심도 함께 새겨져있다. 

40년 전 모범을 보인 강진 사람들의 ‘애향의 전통’은 거대한 강물이 되어 오늘까지 흐르고 있다. 강진군민장학재단이 그 증거다. 재단은 지역 인재들을 지역의 품에서 키우겠다는 군민들의 염원을 품고 2005년 첫발을 뗐다. 

15년 만에 169억 1,700만 원이 모 였다. 특히 올해는 작년에 비해 49일이나 앞서 기탁금 3억 원이 달성되었다고 한다. 지난 3월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로 인해 지역 경제가 어려워졌지만, 강진 사람들은 더 뜨겁게 치솟았다. 지역을 사랑하고 지역 인재를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고 애틋했다. 강진고를 비롯해 강진의 초·중·고 학생들이 장학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장학금뿐만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 등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청소년들의 성장을 돕는다. 

그래서일까. 강진 사람들에게는 ‘애향의 유전자’가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강진고 졸업생 송현석 씨가 강진군민장학재단에 200만 원을 기탁했다. “재학시절 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던 그는 취직 후 후배들을 위해 큰돈을 선뜻 내놓았다. 선순환 사례는 더 있다. 성요셉여고를 졸업한 권수빈·윤슬기 씨가 300만·200만 원, 강진여중 출신 조은이 씨가 200만 원, 강진고 졸업생 김다애·이지윤 씨가 300만·200만 원을 기부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동문들의 나눔도 활발하다. 이들은 매달 월급의 일부를 학생들 후원에 기꺼이 내놓고 있다. 

강진의 품에서 공부했던 학생들이 자립 후 다시 지역 후배들을 키우는 아름다운 전통은 고향에 대한 자긍심에서 나온다. 지역 학교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 유홍준 교수도 부러워한 강진의 풍부한 인적·물적·예술적 자원들을 전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지역 청소년들의 애향심을 기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고향의 학교에 다니는 것이 전제다. 강진에는 인문, 상업, 농업 계열의 고등학교가 고르게 있다. 자신의 적성에 맞춰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이들 학교들은 각기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학력을 알차게 키워가고, 올바른 인성을 갖추도록 지도하고 있다. 대학진학 핵심 요소인 내신성적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는 현실적인 장점도 있다.(타지로 진학한 학생들이 내신관리에 어려움을 겪으며, 전학을 의뢰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잦아 안타깝다.) 

강진의 인재들이 지역의 품에서 자라 다음 세대를 위한 넉넉한 품이 되어주고 있다. 강진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애향의 유전자’가 오늘의 청소년들에게도 강물이 되어 흐르길 기대한다.

정한성(강진고 교장)

정한성(강진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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