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소설 '무진기행'의 무대, 순천만 

“버스가 산 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무진기행>의 주인공 윤희중의 경로를 따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무작정 순천으로 간 이들이 많지 않았을까. 시인 기형도가 “막막한 절망과 음습한 권태가 안개처럼 부두와 상점과 낡은 건물들을 감싸고 있는 도시”(<짧은 여행의 기록> 중)로 순천을기억하게 만든 것도 <무진기행> 때문이다.

소설가 윤대녕도 그랬다. 그는 김승옥의 감수성에 빠져 소설가가 됐다. “그의 문장에 한없이 매료돼 있었고, 또 그 같은 문장을 얻기 위해 도마뱀처럼 몸부림쳤다.”

평론가 유종호는 김승옥의 문체를 ‘감수성의 혁명’ 이라 했다. “그는 우리의 모국어에 새로운 활기와 가능성에 신뢰를 불어넣었다”고 평했을 정도다. 김승옥은 이렇게 <무진기행>을 포함한 문제작들을 발표하고 한국문학사에서 지울 수 없는 이름이 됐다. 1960년대 한국문학의 상징이 됐다.

무진기행의 무대, 순천만 ⓒ김창헌
무진기행의 무대, 순천만 ⓒ김창헌

<무진기행>은 이곳을 떠나 그곳으로 갔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이다. 이곳은 서울이고, 그곳은 무진이다. 무진은 젊은 날의 허무와 상처가 아로새겨진 좋지 못한 추억이 있는 공간이고, 서울은 ‘세속적인 성공’을 이룬 현실의 세계다.

그러나 두 개의 공간이 절대적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무진의 명산물 ‘안개’ 때문이다. 김승옥에 따르면 “무진은 혼돈과 안개, 밤 등 다소 어둡고 무기력한 이미지를 포함하는 가상의 공간이다. 여기서 안개의 이미지는 순수를 지향하는 이상적인 마음과 일상성을 유지하고 싶은 현실의 마음이 혼재돼 방황하는 자아의 갈등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작가는 “누구에게나 무진은 있다”고 말한다. “내 작품이 추구하는 것은 서울에서의 경쟁적 삶을 구하기보다는 한 번쯤 무진과 서울을 왕복하면서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을 경험하는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무진은 지도 위의 어느 곳도 아니면서도 도처에 널려 있는 도시이고, 일상에 밀려 변방으로 쫓겨난 아득한 도시이면서도, 문득문득 상처받은 삶의 한복판으로 파고드는 도시이다. 무진은 가공의 공간이지만 진입로, 흙담길, 술집 여자가 죽은 곳, 바다로 뻗은 방죽, 포구 등은 순천만으로 귀착한다. 순천은 작가가 유년기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냈던, 그만의 고유한 감수성이 형성된 곳이다.

김승옥 문학관 ⓒ김창헌
김승옥 문학관 ⓒ김창헌

순천만 대대포구, 갈대밭을 가려면 ‘무진교’를 건너야한다. 갈대가 솜털뭉치 같은 하얀 씨앗을 맺을 무렵, 순천만은 자주 물안개를 피어 올린다. 그곳에서 “지상에서 세운 모든 것들이 햇볕에 의해 몽롱하게 풀리는” 경험을,  “햇빛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를 합성해 만든 수면제”에 취해보면 어떨까. 

방죽을 따라 15분 정도 걸으면 김승옥 문학관이 있다. 전시관에 딸린 방은 작가가 머무는 공간이다. <무진기행> 주인공처럼 작가는 서울과 이곳을 오간다. 김승옥은 뇌졸중 후유증으로 언어를 잃었다. 작가는 방문객을 반긴다. 함께 사진 찍는 일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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