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과 사람이 함께 엮어온 삶터

문서 하나에서 순천사람들의 ‘철새 사랑’ 을 읽는다. 순천시 순천만보전과 전은주 씨가 작성한 ‘인사발령사항’이다. 성명-흑두루미, 부서-시베리아, 직급-천연기념물 228호. 발령일-2019년 10월 18일. ‘순천만 부서’에 새로 온 직원은 시베리아에서 온 흑두루미다. 이듬해 3월, 5개월 만에 다시 인사가 났다. 흑두루미 씨는 원래 근무지인 시베리아로 돌아갔다. 전은주 씨의 발상으로 하면, 결혼휴가나 육아 휴직일 수도 있겠다. 시베리아는 흑두루미의 번식지이다. 

 

순천만에 찾아온 흑두루미떼 ⓒ순천시

움푹한 연안습지 순천만. 그곳엔 무수한 이 야기와 풍경들이 담겼다. “순천만은 좋은 시절이 따로 없다. 봄엔 새순 돋은 갈대를, 시월엔 활짝 핀 갈대를 본다. 오월엔 개개비들의 비비비 합창과 총총대는 청다리도요새의 청아한 소리가 아름답게 울린다. 안개, 뭉게구름, 물때에 따라 변하는 갯벌의 모습들이 하늘의 뜻에 따라 사각거린다. 그래서 잠깐 왔다가도 온종일 머물게 되고, 슬쩍 왔다가도 두고두고 찾는다.” 순천만자연생태해설사 김경선 씨가 말했다. ‘하늘의 순리’를 뜻하는 순천(順天) 이라는 땅이름 같은 설명이다. 

냇물과 냇물이 만나 바다로 흐른다. 동천과 이사천이 만나는 곳에서 십리 갈대밭이 흔들거린다. 끝자락 대대포구 갈대밭은 품을 넓게 벌렸다. 섬처럼 떠있는, 누군가 정교하게 다듬어 놓은 듯한 정갈한 원형의 갈대군락도 여러 개다. 갯벌은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희귀한 자연물이다. 특히 한국갯벌은 경사각이 1도 밖에 되지 않는 보기 드문 사례다. 

순천만의 광활한 갈대밭 ⓒ순천시

순천만의 광활한 갈대밭은 인근 환경변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1960~70대에 활발했던 간척사업은 해안선의 변화를 가져왔다. 바닷물의 흐름이 달라졌고, 지형이 고착되면서 강 하 구에 퇴적물이 규칙적으로 쌓였다. 주암댐·상사호의 영향도 크다. 댐은 큰 비가 올 때나 가물 때나 일정한 양의 물을 계속 흘려보내 하구의 소금기를 낮췄다. 갈대가 자리 잡고 번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형성된 것이다. 갈대숲에는 개개비, 붉은머리오목눈이, 흑두루미, 큰 고니 등이 찾아와 철새 도래지가 됐다. 

<포구기행>의 곽재구 작가는 순천만 새들의 비행에 대해 “거기에는 일정 부분 짙은 꿈의 냄새가 배어있다”, “비행을 통해 스스로의 유전자 내부에 꿈에 대한 기록들을 저장하고” 있다고 썼다. 

순천만 사람들은 철새 보호를 위해 전봇대 282개와 전깃줄 1만 2,000미터를 철거하고, 친환경농법을 스스로 익히고, 생태교란식물 양미역취와 씨름했다. 동물영화제를 개최하고, 관광객분산을 위해 인공정원인 순천만국가정원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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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갯벌 ⓒ순천시

목포대 선영란 교수는 어느 순천만 연구에서 “오랫동안 자연에 적응하면서 만들어진 도구와 인간활동에는 그곳 삶의 역사적, 문화 적 깊이가 어려 있다. 순천만은 서해바다에서 갯벌은 삶의 밑천이다. 마을남자들은 발로 칠게, 문저리, 숭어 꽃게 등을 잡는다. 마을 여자들은 갯골을 길 삼아 널배를 밀고 꼬막 과 맛조개를 캔다. 볼 수 없는 특수한 남해갯벌의 문화적 적응상 을 만들어 온 지역”이라며, “갯벌과 사람이 함 께 엮어 온 삶의 특수한 방식들이 생태와 결합 될 때 순천만의 현재가 지속가능하다”고 강조 했다. 

갯벌은 삶의 밑천이다.
갯벌은 삶의 밑천이다. (사진_ ①②순천시, ③김창헌)

순천만 양쪽 끝자락 화포와 와온의 너른 갯벌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갯골, 웅덩이에 구름이 지나고 노을이 빛난다. 사람들은 그 갯벌에 의지해 삶을 이어왔다. 갯벌은 삶의 밑천이 었다. 

마을여자들은 갯골을 길 삼아 널배를 밀고 바다로 나간다.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부드러운 갯벌에서 널배는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물때에 맞춰진 작업시간은 밤과 낮이 따로 없 지만, 채취물을 새벽시장에 내다팔 때는 참꼬 막도 맛조개도 밤 작업이 많았다. 

마을남자들은 발(건강망, 삼종어장)로 칠게, 문저리, 숭어, 꽃게 등을 잡는다. “조금에 태어난 사람이 고기를 잘 잡는다”는 말이 있다.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생명활동의 성격을 요약한 말이다. 샛바람 불면 고기가 덜 들고 마파람 불면 고기가 더 든다. 발은 2대 이상 설치할 수 없다. 한정된 자원을 지속가능하게 이용하기 위한 어촌계의 통제와 관리이다. 널배 작업도, 발 작업도 바람 많은 날에는 갯바닥이 말라 훨씬 힘이 든다. 그런 날에는 밥이 더 달다. 

사람들은 해 뜨는 화포를, 해 지는 와온을 보러 간다. 바다는, 하늘은, 나는 새는, 갯벌에 박힌 발들은, 마을 불빛들은, 흔들거리는 갈대 와 함께 한 세상을 이루고 있다. 

글 김창헌  사진 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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