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서쪽 끝 가거도초·신안흑산중가거도분교장 

학교에서 봤던 아이들이 포구에서 뛰놀고 있다. 꼬부랑 언덕길 따라 마을을 걷다가 유치원생과 중학생을 차례로 만났다. 저녁밥을 먹고 당구장에 들어갔더니 학생과 선생님, 주민들이 한데 모여 당구를 치고, 또 배우고 있었다. 따로 또 같이 ‘그들은’ 늘 함께 하고 있었다.

섬의 가장 높은 곳에 학교가 있다. 교문에 이르러 바다 쪽을 향해 서니 섬의 관문인 가거도항과 대리1구 마을이 경쾌하게 내려다보인다. 최고의 위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가장 좋은 곳에서 배우고 가르치기를 소망했을 섬사람들의 지극한 마음이 짐작된다.

제주도를 제외하면, 가거도는 내륙에서 가장 멀다. 이곳에 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 그리고 중학교가 한 자리에 모여 있다. 전체를 아우르는 명칭은 ‘가거도초등학교·신안흑산중학교가거도분교장’(이하 가거도초·중)이다. 초등학교는 본교이고, 중학교는 흑산중학교 분교이다. 초등학생 3학급 7명, 유치원생 1학급 2명, 중학생 2학급 7명 등 총 16명이 학교에 다닌다.

“화상수업이 재미있어요. 육지에서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하고 선생님이 오면 제일 즐거워요. 여름에 바다로 풍덩 들어갈 수 있어 좋은데 문방구가 없는 건 별로예요.”

초·중학생 몇 명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들이다.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은 아마도 해남고등학교 학생들일 것이다. 지난 9월 25일 예비교사를 꿈꾸는 5명의 해남고 학생들이 이곳 초등학생들에게 독도와 공룡을 중심으로 멘토링 수업을 펼쳤다. 그 때의 시간이 아이들에게 깊이 각인된 듯싶다.

③ 교사가 되길 꿈꾸는 해남고 학생들이 가거도초 학생들과 멘토링 수업을 펼친다. 학생들은
7월부터 온오프라인 교류활동을 해왔다. ④ 가거도초·중은 화상수업에 힘을 쏟는다. 외부강사도, 학원
도 없기 때문이다. ⑤ 멸치잡이 노래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

코로나19로 화상수업이 전면화되고 있다. 하지만 가거도초·중의 화상수업은 코로나19와 상관이 없다. 박장규 교장은 “먼 섬에는 외부강사도 학원도 없다”면서 “교과 외 역량을 키우는 데 화상수업이 큰 역할을 한다고 보아 많은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열악한 교육 인프라가 첨단의 교육방법을 먼저 채택하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사례다.

올해 초등학교는 글쓰기, 중학교는 시 읽기를 화상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광주교대 최원오 교수가 이끈다. 몇 차례의 원격수업으로 학생들의 상태와 필요 등을 파악 중이다. 11월 즈음 최 교수와 작가, 대학생 등으로 꾸려진 전문팀이 가거도로 와 일주일 정도 머물며 대면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학교는 교육과 마을살이의 구심점

초등학생 자녀 둘을 학교에 보내고 있는 임세국 학교운영위원장은 “마을이 제공하지 못한 것들을 학교가 제공해주고 있으니 든든하고, 또 미안하기도 하다”며 “학생 수도, 규모도 작지만 학교는 교육뿐 아니라 가거도 주민들의 삶에 든든한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가거도에는 논이 없다. 비탈진 곳에 작은 규모로 약간의 밭이 있을 뿐이다. 주민 대부분은 어업이나 낚시 등 관광분야 종사자이다. 바다 물때와 맞춰, 혹은 관광 주기에 맞춰 생업을 하다 보니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돌보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 저녁돌봄(18시~20시, 초등학교), 야간공부방(18시~20시 40분, 중학교)을 운영하고 있다. 독서, 숙제 봐주기, 영화감상, 노래 배우기, 당구 등 교과 외 영역으로 분야가 다양하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의논해서 결정한다.

‘웬 당구?’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가거도에는 놀이 시설이 당구장 하나밖에 없다. 초·중 학생들을 포함해 거주민 모두가 모여 일상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중등교사로 정년퇴임한 후 가거도에 정착한 박종찬 선생님의 지도로 학생과 교직원, 주민들이 당구를 배우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일주일 동안 학생과 지역민이 모두가 참여하는 당구대회를 열 예정이다.

① 교실 창가에 서면 섬의 관문인 가거도항과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② 초·중학생들을 포함해 지역민 모두가 당구장에서 일상적인 교류를 한다.
① 교실 창가에 서면 섬의 관문인 가거도항과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② 초·중학생들을 포함해 지역민 모두가 당구장에서 일상적인 교류를 한다.

가거도는 여러 분야에서 이미 ‘하나’처럼 움직이고 있다. 가거도초 이광표 교무부장은 “수업과정에서 초·중 선생님들이 서로 도울 뿐 아니라 운동회나 학예회를 하면 유·초·중이 모두 함께 한다”며 “이 때는 지역민은 물론, 섬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와 경찰, 그리고 한전이나 민간기업 종사자들까지 전부 참여한다”고 말했다. 사람이 귀한 섬에서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대우하는 모습으로 읽힌다. 곧 열릴 당구대회 또한 섬 전체가 들썩이는 축제가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중학교 전유성 분교장은 “가거도초·중이 법제적으로 ‘통합학교’로 운영되고 있는 건 아니다”며 “하지만 건물과 운동장을 같이 쓰고, 입학식·졸업식·체험학습을 함께 하고, 아이들도 유·초·중이 섞여서 항상 어울려 논다”고 말했다. 향후 통합학교로 운영된다면 ‘특별한’ 모범 창출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⑥ 생업 때문에 아이들을 돌보기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저녁돌봄, 야간공부방 등을 운영한다.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결정한다. ⑦ 운동회나 학예회는 유·초·중이 함께 연다. ⑧ 가거도에서는 배움과 삶, 어른과 아이 등 모든 연결이 하나로 건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거도는 끝에 있다. 박장규 교장은 “끝은 새로운 시작이자 희망”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학교는 삶터, 배움터, 놀이터, 꿈터, 생명터”라고 강조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단절’일 것이다. 배움과 삶, 현실과 꿈, 일과 놀이, 어른과 아이의 연결이 허술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가거도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건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작아서, 끝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학교의 열정이 살아 있어서 ‘그들은’ 오래전부터 늘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고 있었다.

= 글 이정우 / 사진 마동욱·가거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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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가거도

한반도 최서남단, 가거도

일본 오키나와(355㎞), 중국 절강성(390㎞)보다 서울(420㎞)이 더 멀다. 국토 최서남단의 가거도는 국토의 동쪽 끝인 독도(천연기념물 제336호), 서해 최북단인 백령도(명승 제8호, 천연기념물 제391호)와 최남단인 마라도(천연기념물 제423호)와 함께 우리 국토를 감싸는 ‘끝섬’ 중 하나이다. 이 모든 끝들은 국토의 시작이기도 하다.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쾌속선을 타고 136㎞ 바닷길을 건너야 섬에 닿을 수 있다. 직항의 경우 3시간 10분 안팎, 중간에 여러 섬을 경유하는 ‘완행’을 타면 4시간 30분 안팎이 걸린다.

가거도의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먼 가장자리 섬이라는 의미로 ‘갓갓섬’으로 불렸다 한다. 이후 <신동국여지승람>(1530) 제35권에는 ‘가히 아름다운 섬’ 가가도(可佳島)로 표기된다. 이후 ‘가히 살만한 섬’ 가거도(可居島)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1910~1945)에는 소흑산도로 불리웠다가 2008년 가거도로 이름을 되찾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속한다. 섬 면적은 9.9㎢(해안선 22㎞)이며, 55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섬 중앙의 독실산(해발 639m)이 바다로 뻗어나가면서 형성된 기암괴석이 절경을 만들어 낸다. 후박나무 군락과 다양한 종류의 희귀식물들이 분포하고 있으며, 수많은 철새가 봄철과 가을철에 서해를 건너 이동하면서 중간기착지로 이용하고 있다. 가거도 북서쪽에 반도형 지형으로 돌출된 섬등반도는 올해 8월 28일 국가지정문화재명승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가거도 서남쪽 47㎞에 있는 ‘가거초’는 수심 7.8m 아래 위치한 수중암초로 지난 2009년 우리나라 두 번째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조성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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