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학교 공간혁신 ‘다되는 교실 다품는 학교’ 1년

나주 금천중 3층 골드스카이. 학생들은 사물함이 놓였던 공간을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바꿨다. 

나주금천중학교가 재미난 공간들을 마련하고 지난 6월 12일 공개행사를 열었다. 카페처럼 커다란 통유리창을 마주한 의자들, 물결 모양의 재미난 원목벤치가 눈길을 끌었다. 친구들과 도란도란 얘기하기에 딱 좋았다. 곳곳에 개성과 편안함이 공존했다.

금천중은 2017년 빛가람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신축 건물을 갖췄지만, 사실 기존 학교건물과 다른 점이 없었다. 공공기관으로 출근하는 부모와 함께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 휑한 신도심에서 하교 후 갈 곳이 없는 학생들은 방황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던 터에 휴식과 어울림을 위한 공간 ‘골드 스카이’를 학교 곳곳에 마련한 것이다.

나주금천중학교는 휴식과 어울림을 위한 공간을 학교 곳곳에 마련했다.

반면 영암의 삼호중앙초등학교는 오래된 건물에 과밀 문제를 겪고 있었다. 유치원생까지 합치면 650여 명에 이를 정도로 학생 수가 많다. 기존 2층짜리 본관 뒤에 4층짜리 별관을 지었지만 늘 콩나물시루와 같았다. 답답한 학생들은 곧잘 다퉜다. 밖에서 놀라치면 건물 사이는 주차된 차로 가득했다. 유휴공간이 없어 교사들도 복도에서 상담을 했다.

그 삼호중앙초도 변신했다. 주차공간이 틈새 놀이터로 바뀌고, 해먹과 모형 나무집들이 자리했다. 야외 데크무대는 장기자랑과 발표수업도 할 수 있다. 운동장 놀이터도 대변신을 했다. 학생들이 특히 선호하는 짚라인과 뱅뱅이가 들어섰고 그늘 아래 쉴 수 있는 벤치들도 마련됐다. 김미경 교장은 “학생들이 놀이터에서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면 투닥투닥 싸울 일도 확 줄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주차공간이 해먹과 모형 나무집이 있는 틈새놀이터로 바뀐 영암 삼호중앙초. 운동장 놀이터에는 짚라인과 뱅뱅이가 들어섰고 그늘 아래 쉴 수 있는 벤치들도 마련됐다.

 

공간혁신 과정 학교 주체가 주도, 민주시민 역량 성장
이 유쾌한 변신들은 모두 전남교육청이 주관한 학교 공간혁신 지원사업의 결과물이다. 혁신 과정을 학교 구성원들이 주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나주 금천중과 영암 삼호중앙초의 개선 내용이 다른 것은 각 학교의 요구가 달랐기 때문. 개선사항을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고 합의점을 찾아 공간혁신을 현실화 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놀라운 경험들을 했다.

이유빈(금천중) 학생은 “처음엔 ‘우리가 정말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절반이었다. 용기 절반을 내어 공간혁신 동아리를 시작했다. 아이디어가 현실로 바뀌는 것을 보니 환상적이었다”고 했다. 삼호중앙초의 놀이터도 집단논의의 산물이다. 여름에 뜨겁지 않게 놀이기구 재질을 나무로 고른 것도, 짚라인과 뱅뱅이를 설치하자고 한 것도 모두 학생들이었다. 

공간혁신 과정은 동아리 활동 형태로 진행됐다. 담당교사, 참여 학생들, 건축가, 촉진자가 TF팀을 꾸려 건축을 공부하고 견학을 다니며 공간 개선을 기획했다. 20~40명 이내의 학생 동아리가 학교 전체의 뜻을 대표할 수 있을까? TF팀은 전체 구성원의 뜻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설문조사, 토론회 등을 수차례 거쳤다. 현실적으로 모두를 대변할 수 없더라도 거의 대다수가 만족하는 결과물을 끌어낸 힘이다.

1년 동안의 공간혁신 활동은 공간을 바꾸고 사람을 바꿨다. TF팀 활동을 한 최지선(삼호중앙초) 학생은 “평소 수학, 국어 같은 것만 배우다가 건축을 접하니 신선했다. 스케치북 없는 그림 같았다”고 했다. 김주미 학생은 “서울로 견학을 갔다가 기구가 없이도 멋지게 만들어 놓은 놀이터를 봤다. 고정관념이 깨졌다”고 했다. 정재오 학생은 장래희망이 건축가로 바뀌었다. 

학생들은 공간개선 의견을 모으면서 합의점을 찾아 현실화 하는 과정에서 ‘내 요구’를 넘어 ‘너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법도 익혔다. 왼쪽부터 나주금천중 학생의 스케치와 논의 현장, 순천복성고 학생들이 제작한 설계 조감도 모형

학생들은 건축의 재미뿐 아니라 다양한 걸 배웠다. 금천을 영어로 풀어 ‘골드스카이’라는 이름을 지은 학생들은 공간에 대한 자부심이 커졌다. 학생들은 공간개선 의견을 모으면서 ‘내 요구’를 넘어 ‘너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법도 익혔다. 주인의식과 공동체의식을 모두 배워간 것이다. 금천중 공간혁신 프로젝트를 담당한 조주희 교사는 “(공간혁신은) 불편한 학교공간에 순응하며 살아온 그동안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과정이었다. 공간만이 아니라 참여 방법과 진행방법에서도 혁신을 경험했다. 이것이 민주시민교육 아닐까”라고 말했다.

우리네 학교는 어쩔 수 없이 군대 연병장과 내무반을 닮았다. 통제와 획일화를 요구하는 건물 구조다. 공간혁신 사업은 학교 건축에 남은 군사문화의 잔재를 전복시켰다. 공간혁신 프로젝트가 단순한 리모델링 공사나 건축수업이 아닌 이유다. 故 정기용 건축가는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라고 했다. 학교 공간혁신은 건축의 참뜻을 입증하고, 2020년대 학교에 어울리는 삶을 직조해내고 있다.

 

작년 52개 학교에 이어 올해 43개 학교 선정
전남교육청은 2019년부터 학교 공간혁신 공모사업을 시작했다. 모두 52개 학교가 선정돼 지난해 봄부터 프로젝트에 착수했고, 1년 후인 지금 성과물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6월 3일 순천 별량초와 해남 화산초를 시작으로 3차에 걸쳐 학교 공간혁신 공개의 날 행사를 열고 있다.

학교 공간혁신은 교육부 지원 사업으로 시작됐다. 전남교육청은 이를 민선3기 전남교육 철학인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학교’와 접목했다. 그 철학을 반영한 것이 전남 학교 공간혁신 공모사업 명칭인 ‘다되는 교실 다품는 학교’이다. 모두를 존중하고 연결하는 학교 공간혁신은 학부모와 지역주민들까지 참여시켰다.

2019년에는 52개 학교가, 2020년에는 43개 학교가 공간혁신 사업에 참여했다. 2023년이 되면 전남 22개 시군의 많은 학교가 공간혁신을 마칠 수 있다.

금천중 학부모 김선유 씨는 “이미 완성된 공간에서 자녀들을 가르치는 곳이 학교라 생각했다. 학생들 눈높이에 맞춰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부모들도 개선에 참여한 공간이라서 더 애정이 간다”고 말했다. 영암 삼호중앙초는 학교 옆에 생긴 공영주차장으로 주차공간을 옮기면서 놀이터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역사회의 협조, 교사와 학부모들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한 마음들이 더해진 덕분이었다. 

학교 공간혁신 공모사업은 교육부의 교육환경 개선비를 재원으로 한다. 세부 분야는 학교 전체를 리모델링하는 ‘학교단위’ 혁신과 학교의 일부를 바꾸는 ‘영역단위’ 혁신이다. 이 두 분야는 모두 건축가와 촉진자를 선정해 용역 계약을 맺고 진행한다. 

전남교육청은 올해 공모에 ‘자율 공간혁신’ 지원 분야를 추가했다. 용역 계약 없이 교사가 자율적으로 소규모의 공간혁신을 진행한다. 전남교육청 자체예산으로 지원하는 분야다. 학교들은 비교적 규모가 작고 부담이 적은 자율 공간혁신을 진행하면서 공간혁신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일종의 도움닫기 단계다.

올해는 학교단위 지원 1교(영광 묘량중앙초), 영역단위 지원 29교, 자율 공간혁신 지원 13교로 모두 43개 학교가 선정됐다. 전남교육청 중장기계획으로 보면 2019년은 도입기였고, 올해인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은 성장기다. 민선3기 마지막인 2023년은 안착기이다. 그때쯤이면 전남 22개 시군의 많은 학교가 공간혁신을 마칠 수 있다. 각 지역들의 자연환경과 문화가 다르고 구성원들이 다른 만큼 전남 학교들은 저마다 고유한 빛깔을 띨 것이다. 그사이 학생들은 주체적인 민주시민으로 부쩍 성장해 있으리라. 학교 공간혁신은 공간을 바꾸고 삶도 바꾼다. 
 

해결해야할, 동시에 의욕을 부르는 과제들
2020년 봄, 전남 42개 학교들은 개선공간을 본격 이용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영암 삼호중앙초의 놀이터는 설치검사를 앞뒀다. 그 와중에 올봄 전국의 모든 학교가 코로나19 국면을 맞았다. 코로나19 추세가 가라앉지 않는다면, 설치검사가 끝나더라도 놀이터는 한동안 적적할 것 같다. 금천중 골드스카이의 주된 이용자도 아직까지는 교사들이다. 이들은 “교사 몇 명이서 회의를 해도 분위기가 예전보다 훨씬 밝고 자유로운데,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이용하면 얼마나 즐거워할까” 하고 아쉬워한다.

코로나19 국면은 첫발을 뗀 공간혁신 사업에도 과제를 안겼다. 비대면이 권장되면서 공간에 디지털과 원격시스템을 접목하는 문제다. 즉 ‘공간’에 대한 인식을 대폭 넓혀야 한다. 한편으로 이 과제는 공간혁신 참여주체들에게 새로운 의욕을 줄 수도 있다. 공간문제를 공동으로 풀면서 함께 성장하기가 이 사업의 큰 축이기 때문. 

전남교육청은 2019년 참여 학교들의 후기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공사를 하다보면 설계를 수정하고 변경할 일이 많은데, 지원비가 학교가 아닌 교육지원청으로 내려와서 자유롭게 집행하기 어려웠다. 예산은 학교에서 자유롭게 쓰고, 교육지원청은 행정지원만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는 목소리들이 있다.

조주리(삼호중앙초) 교사는 “공간혁신 TF팀 동아리가 정규 수업 후 남는 시간에 활동하니까 1년의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어린이 건축교육, 어린이 감리단 활동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제안했다. 사업 목적이 단순 공간개선이 아니라 과정 전체가 혁신이고 배움의 원천이라 하나하나 더욱 내실을 기하고 싶다는 것.  

전남교육청의 갈 길이 멀다. 공간혁신이 품은 가능성을 맛본 학교들은 자체적으로 다음 행보에 나섰다. 삼호중앙초 김미경 교장은 “야외무대를 만들어놓고 보니 학생들이 그 주변을 벽화나 전시장으로 꾸리자고 한다. 고치면 그 다음이 보인다. 그 과정 역시 배움이 될 것이다. 공간을 최대한 잘 활용하게끔 교육과정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교육청은 공간혁신을 ‘전남형 미래학교’ 실현과정의 하나로 보고 있다. 미래핵심역량을 기르는 학교혁신, 지역과 협력하는 교육공동체, 그리고 학생들 중심의 공간혁신을 펼쳐 미래사회를 여는 민주시민을 기르는 학교다. 공간혁신 공모사업은 이 모두를 관통하는 유용한 방법이다. 탄탄한 첫 걸음을 떼고 성장기에 접어든 전남의 ‘다되는 교실 다품는 학교’ 사업, 다음 편이 기대된다. 

저작권자 © 전남교육소식 함께꿈꾸는미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