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동초 1학년 학생들이 쓴 '나랑 자고 가요'

아빠가 산타 할아버지한테
우리집에 오라고 전화했다.
산타 할아버지, 우리집에 마지막으로 와요.
나랑 자고 가요.

<나랑 자고 가요>는 한글을 이제 막 깨친 초등학교 1학년의 맑은 말들이 삐뚤빼뚤 담긴 시집이다.

 

지난해 광양동초 입학생은 모두 11명. 이중 9명이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한 채로 등교했다. 김영숙 담임교사는 “노는 게 공부다”를 교육철학으로, 아이들이 학교 뒤뜰과 텃밭, 넓은 운동장에서 걷고 뛰고, 보고 듣고, 만져보고 느끼며 천천히 한글을 익히도록 했다. 봄과 여름을 보내며 학생들은 받침 없는 말을 곧잘 읽고 썼다.

2학기가 되자 김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전 제자들이 남긴 시들을 들려주었다. 그럴 때면 교실 여기저기서 킥킥 웃음이 터졌다고. 또래의 시를 들으며 시와 가까워진 학생들은 이윽고 시 쓰기에 도전했다. 첫날부터 시를 뚝딱 써내는 아이, 다른 시를 비슷하게 흉내내는 아이, 제목만 쓴 아이, 한 글자도 못 쓰고 연필만 꼭 쥔 8살도 있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 함께 시를 썼다.

꾸준히 하니 재미가 붙었다. 쓸 수 있는 단어도 늘었다. 시 공책이 가득 찰 때 즈음 학생들과 김 교사는 동시집을 내기로 했다. 어린 시인들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시 10편을 골라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때문에 <나랑 자고 가요>에는 쪽마다 글씨가 춤을 췄다.

“일부러 반들반들하게 쳐내고 다듬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여덟 살의 말을 잊을 때가 오겠지요. 하지만 ‘시의 집’에서 지금의 맑은 언어를 언제든 만났으면 해서요. 어린 시절에 볼 수 있고, 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세상이 여기 담겼거든요.” 김영숙 교사가말했다.

시집을 읽은 곽재구 시인은 추천사를 이렇게 남겼다.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신비하고 맑습니다. 아이들의 눈빛이 변하지 않고, 아이들의 시가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 곁에 꽃향기처럼 남아 있다면 인간의 세상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 이렇게 맑고 아름다운 세계가 거친 인간의 삶 곁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탁한 세상에 지쳐 한 모금 맑은 약수가 필요하다면 찾아 읽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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