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작곡가 교가 없애고 새 교가 제작
학생이 작사, 음악선생님이 작곡
가사에 선후배 돈독한 학교 특색 담겨

“이건 배신이야! 얼마 전에도 교가 부르는 수행평가도 했었는데, 우리 교가가 친일교가라니!”

전라남도교육청으로부터 교가가 친일잔재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구례여중 이서현 학생은 망연자실했다. ‘브루투스 너마저’를 외쳤던 카이사르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3년간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 했던 교가가 친일잔재임을 알게 된 같은 반 학생들도 허탈해했다. 그러나 곧 마음이 돌아섰다. “어쩐지 군가 같아서 내 스타일은 아니었어. 가사도 입에 착 안 붙고.”


구례여자중학교(교장 성금죽)는 교가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작사는 학생들이 맡았다. 구례여중은 새 교가의 가사를 짓기 위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었다. 학생들은 음악 수업과 연계해 작사하는 방법을 공부하고 구례의 특산물, 구례여중의 상징물들을 알아보는 교육과정을 거쳤다.

새 교가를 연습중인 구례여중 김혜인 교사와 성금죽 교장, 학생들.
새 교가를 연습중인 구례여중 김혜인 교사와 성금죽 교장, 학생들.

“구례하면 떠오르는 게 지리산과 섬진강, 산수유잖아요. 저희가 쓴 가사 속에 처음엔 거의 그런 단어들이 들어있었죠. 근데 그런 것들이 우리 학교만의 장점은 아니니까 나중엔 제외하자고 뜻을 모았어요.” 2학년 조예현 학생은 말했다. 수정에 수정을 거쳐 구례여중이 지향하는 목표, 학교의 분위기가 담긴 지금의 가사가 확정되었다.


“따스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는 곳이란 두 번째 소절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우리 학교는 선생님들도 친절하시고 선후배도 서로 친하거든요.” 조은진 학생의 말에 이서현 학생도 맞장구쳤다. “맞아. 그래서 난 다음 가사, ‘서로 서로 도우며 나누는 우리의 우정’ 부분이 제일 와 닿아.”


곡은 김혜인 음악선생님이 붙였다. “작곡은 ‘생초짜’에요. 모르니까 무식했죠. 직접 곡을 써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전남 지역 학교 중 친일음악가가 제작한 교가를 사용하는 곳은 14개교였다. 이 중 해당 학교 학생들이 가사를 쓰고, 선생님이 직접 곡을 붙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다수는 외부 전문가의 손을 거쳐 완성되고 있었다. 


김 교사는 ‘생초짜’가 달려들기에 너무 큰일을 맡은 배경에 학교가 참여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적극적이에요. 매년 교내 공모전도 몇 개씩 열리고 참여하는 인원도 엄청 많아요. 학생들이 즐겁게 참여하니까 덩달아 열정이 솟아요.” 

학생들이 가사 쓰고, 선생님이 곡을 지은 구례여중 새 교가.
학생들이 가사 쓰고, 선생님이 곡을 지은 구례여중 새 교가.

김혜인 선생님은 힘들었다 말하면서도 표정이 밝았다. “영광이죠. 교가에 제 이름을 남기다니! 다시 없을 기회죠. 또 기회가 온다면, 먼저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작사를 하라고 한 후에 작곡을 할 거 같아요. 저흰 거꾸로 했거든요. 곡은 ‘고향의 봄’처럼 편안하게 구성돼 부르기 쉬운 대신 글자수 제한으로 아이들이 제대로 상상력을 못 펼친 거 아닌가 싶어 조금은 아쉬워요.” 옛 교가를 새 교가로 바꿀 준비 중인 학교를 위한 경험에서 온 ‘꿀팁’이었다.


구례여중 새 교가는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녹음만 남았다고. “학교가 없어지지 않는 한 ‘우리 교가’는 계속 불릴 거잖아요. 너무 뿌듯하고 애착이 가요. 졸업해도 영영 못 잊을 거 같아요.” 이서현 학생이 말했다. 학생들이 쓰고 선생님이 곡을 붙인, 구례여중 새 교가는 올해 졸업식부터 첫 공식 일정에 나선다. 


조현아(홍보담당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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