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교육 놀이동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놀이동산 곳곳에 숨은 장난꾸러기 ‘모두와 소중이’ 5쌍을 찾아주세요. 표시하신 후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으로 보내주세요.※ 독자퀴즈는 소식지 제작업체 '디엔에스'에서 진행합니다.▼▼▼▼인쇄하실 분 파일 내려받기▼▼▼▼
치지직… 치지직… 구독자님, 구독자님~ 거기 계신가요? 어떤 물건을 보면, 어떤 음악을 들으면, 어떤 놀이를 보면 틀림없이 ‘그때 그 시절’로 보내버리는 시간여행 ‘아이템’이 여기 있습니다. 함께 추억 여행 떠나보시죠. ※ 6월에도 추억여행은 계속됩니다. 사진과 사연 보내실 곳 jn-edu@naver.com 작대기 하나로도 행복했던 시절‘막가지(막대기의 전라도말)’ 하나로 온마을이 ‘미지의 세계’가 되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대나무 하나 주워 뒷산을 탐험하고 시멘트 구멍을 들쑤시며 다녔지요. 그러다가 벌집을 건드리면 혼비백산 도망갔
‘성공한 사람’이 남긴 것팔금초 선배님의 마지막 선물―신미애(신안 팔금초) “어머니도 팔금초를 졸업하셨고 지혜로우신 분이셨어요. 여러분도 똑똑하고 건강하게 자라 대한민국의 훌륭한 인재가 되기를 바라요.” 박성기 씨가 학생들을 애틋하게 바라봤다.그의 모친은 최옥덕 여사다. 올해 초 소천하셨다. 소박한 장례식이 열렸다. 여러 사람들이 조의를 표했다. 장례비용을 치르고도 남았다. 박성기 씨와 형제들은 고민했다. 어머니의 생전 유지를 받들고, 선친들의 뜻을 이어가기로 했다. 자녀들은 팔금초에 2천만 원을 학교발전기금으로 전달했다. 사실 고
정의사회 첫걸음은 기억하는 것전남교육청과 소속 기관, 학교가 세월호참사 7주기를 맞아 추모주간을 운영했다. 교직원들은 진도 팽목항과 목포신항, 그리고 소속 기관에서 추모의식에 참여했다. 사진은 목포신항에서 진행된 목포교육지원청의 기억식. 목포교육지원청 교직원과 목포학생회연합회 학생 60여명이 함께 했다. 추모공연, 추모시 낭독, 치유의 춤 등이 진행됐다.입학사정관 출신 대입지원관 본격 활동 진로진학 상담의 전문성이 대폭 강화됐다. 먼저 대입지원관과 함께하는 학부모 진로진학 상담이 본격화됐다. 대입지원관은 요일에 따라 권역별진학지원센
진도서초, 잊지 않을게요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현수막을 들고 팽목항 앞에 섰습니다. 모든 학년, 모든 반이 시간을 두고 함께 했어요. 다시는 이런 슬픔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임서현) 나주중, 운동장에 걸린 세월호 리본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추모의 메시지를 띄웠습니다. 학생들의 메시지가 하늘에 닿기를. 여수 여남중·고, 서로 돕고 살아야죠 학생의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학교가 앞장서 여수교육지원청, 남면사무소, 진남와이즈맨클럽, 한화케미칼봉사단, 여수중부봉사단과 손잡고 복구에 나섰어요. 덕분에
“앞으로 일자리는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에서 많이 생길 겁니다. 진도를 가보니 콘도를 운영하는데 진도주민 200명 정도를 채용했다고 해요. 일자리를 얻은 젊은 친구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잘살고 있다고 하더군요.”전남도의회 교육위원회 윤명희(비례) 의원은, 학생을 지역에 정착하게 만드는 일자리와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래서 여러 투자설명회에 가서 마을주민들을 만나고 다닌다. 일자리가 생기면 자녀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취직해서 살 수 있지 않겠냐고.그는 지난해 한 사회단체가 장흥지역 고등학생을 전수조사한 설문 결과를 제시한다.
마흔한 살에 초등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어요. 30대 후반 교대 진학 전까지 생각도 삶도 자유로운 편이었죠. 교사가 된 후 아이들과 함께 영상 제작에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건 20대에 연극에 빠져 살았던 영향이 클 거예요. 연극이나 영화는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의 조화로움을 통해 만들어지는 종합예술이죠. 아이들은 제작 과정을 통해 ‘함께’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체험으로 느끼면서 성장 발전해 나갑니다. 방과후 영화제작부를 운영하는 데 시간과 열정을 쏟는 이유기도 하고요. 우연한 기회에 아이들과 영상 제작을 하게 됐어요. 2015년 늦
네 명의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동안 내 이름은 줄곧 ‘엄마’였습니다. 아이들과 보내는 일분일초를 알차고 소중하게 지켜나가는 게 가장 큰 목표였어요. 공부도 아이들을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배움을 계기로 저는 180도 달라졌어요. 완전히 다른 세계에 발을 디딘 기분이랄까요? 아이들의 ‘엄마’로서만이 아닌, 새로운 ‘나’의 모습을 찾았어요. 많은 아이들에게 엄마 같은 친구, 선생님이 될 수 있어서 더 벅찬 감동을 느껴요. 매일매일 열정이 솟아난답니다.시작은 무안교육지원청에서 주관하는 ‘무안모아 학부모 아카데미’였어요. SNS에서 아카데미
1983년 창단 이후 300회가 훌쩍 넘는 전국대회 입상 이력을 가진 씨름 명가名家다. 우수 인재 영입, 열정적인 지도자, 그리고 학교의 전폭적 지원 등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며 40여 년 동안 전통스포츠의 명맥을 이어왔다. 2017년 열린 제98회 전국체전에서는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라는 씨름계의 전무후무한 성적으로 지금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전남을 넘어 전국을 이끄는 여수공업고등학교 씨름부 학생들을 만나봤다.우리나라 대표 민속경기인 씨름을 지키고 선수를 양성하는 곳이죠. 씨름은 2명의 선수가 샅바를 서로 맞붙잡고 힘과 기술을
댕댕=특정 음절(멍멍)을 비슷한 모양(댕댕)으로 바꿔쓰는 요샛말핫플=핫플레이스의 약자. 인기장소의 뜻한때는 특별했다. 지금은 더 이상 유별난 ‘식구’가 아니다. 반려견, 반려묘 등이 일상의 평범한 동반자, 이웃이 된 지 오래다. 반려동물을 위한 식재료 가게와 병원은 당연, 교육시설, 카페, 유치원 등 관련 업종이 가파른 추세로 성장하고 있다.전문가부터 초보적인 돌봄까지 일자리의 영역도 넓혀가고 있다. 전남만 하더라도 반려견들의 교육, 또는 휴식 등을 제공하는 시설이 20여 곳에 달한다.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문화와 산
어떤 것은 옆으로 번지고, 또 어떤 것은 위로 솟는다. 길을 따라 부지런히 흐르는 삶의 여백에 삶을 마친 누군가가 쉼표처럼 고요히 엎드려 있다. 헝크러진 가운데 질서정연한 우주의 미학을 보성 녹차밭 하늘에서 확인한다.
#장면 하나. 시아버지는 매실나무 2,000그루를 심었다.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백운산 자락 언덕이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매실을 따고 달여 농축액인 고膏를 만들었다. 가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얀 급체 환자가 아랫마을에서 올라왔다. 시아버지는 따뜻한 물에 그 고를 풀어 마시게 했다. 아픈 이의 얼굴엔 곧 핏기가 돌았다. 약도 병원도 아득했던 시절, 시아버지의 고는 마을의 비상구급약이었다. #장면 둘. 며느리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이 언덕으로 스물셋에 시집왔다. 끝없는 밭일에 한숨이 절로 났다. 좋은 계절, 예쁜 섬진강이 부아를 돋웠다.
고려·조선시대, 중앙정부에서 활약한 거물급 선비가 전라도로 유배 와서 이곳 사람들의 지적 성숙, 문화적 세련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른바 ‘유배문화론’의 시각이다. 과연 그럴까.고려 때는 물론, 조선시대까지도 권력과 돈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농본사회 부의 원천은 곡식을 생산하는 땅과 사람이었다. 농사지을 땅이 넓었던 전라도는 어느 고장보다 풍족한 곳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민중의 삶 또한 넉넉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른 차원의 문제다.)전라도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이중환조차도 “기후가 화창하고 물자가 많으
시대의 부름에 밀면서 밀리는 파도처럼 응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돌아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 응답이 세상을 바꾸기도 했다. 박관현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저 평범한 법학도였다. 그의 어깨 위에는 늘 가족이 올려져 있었다. 그는 영광 불갑면의 가난한 집안 5남3녀 중 장남이었다.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법관이 되는 것은 그의 오래된 신념이었고, 온 집안의 꿈이었다.‘들불야학’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는 그랬다. 군대를 제대하고 전남대 법대에 들어와 오직 법전만 보고 살았다. 그랬던 박관현이 광천동(광주)의 노동자와 ‘들불야학’을 만
존경하는 전남교육공동체 여러분, 반갑습니다.1980년 5월, 광주·전남 시도민들은 신군부의 불의에 맞서 싸웠습니다. 밥과 피를 나누는 항쟁공동체를 일궈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와 번영은, 오월의 희생 위에서 싹 튼 꽃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리고 저를 포함해 살아남은 이들은, 5·18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오월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역사 왜곡에 맞서 5·18의 진실을 알고, 알리고, 기억해야 합니다. 알고 알리고 기억하는 일이 교육의 본령입니다. 크게 진
신안은 우리나라 최고·최대의 소금 생산지입니다. 강진은 지구촌 어느 문화권에서도 흉내 내지 못한 고려청자의 본산지이며 국보급 청자 80%를 빚어낸 곳입니다. 넓고 건강한 생태계를 지닌 무안의 해안선은 세계 5대 갯벌로 꼽힙니다. 전남의 박물관에서 ‘으뜸’을 봅니다. 가 ‘박물관은 살아있다’ 2편에서 다루는 내용입니다. 전남의 위대한 자연, 역사 유산들과 그것을 기억·계승·보존하려는 움직임들을 소개합니다. 야호, 내가 직접 만든 소금이라니!신안 증도 소금박물관끝없이 펼쳐진 소금밭 위에 선다. 고무장화 신고 밀대 들